클래식으로 발효시킨 해창막걸리…그 걸쭉한 맛의 비결은?

생활환경
클래식으로 발효시킨 해창막걸리…그 걸쭉한 맛의 비결은?
<심인섭의 남도견문록> 전남 술도가 ① - 해남 해창막걸리
  • 입력 : 2020. 06.04(목) 11:59
  • 심인섭
해남이 아니면 해창도 없었다. 바다를 품은 창고, 해창에는 해남의 물과 바람과 자연의 호흡이 있다.

그 기운에 취해 자주 이곳에 들렀던 한 남자는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해창과 운명적인 만남은 그때부터 시작했다. 해창 막걸리의 진한 여운이 그의 운명이 되었고, 그로 인해 해창 막걸리의 운명도 바꿨다.

한 달간 수행하는 막걸리를 만든 것이다.

그의 막걸리 철학이 궁금해서 먼 길 마다않고 땅끝마을 해남까지 시나브로 걸음 했다.

해창막걸리 전경

해창 술도가 그림자를 따라 그의 놀이터가 보인다. 100년이 되어가는 일본 주택이 양옥과 어깨를 빗대 마치 강진의 금서당 분위기가 난다. 해 걸음이 나날이 길어지는 봄볕 늘어진 날, 해창 주조장은 겉은 고요해도 움직임은 바빴다. ​

해창 막걸리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 1923년 일본인 시코타 히코헤이가 이곳에 정미소를 지어 도정한 쌀로 정종을 만들면서 해창 주조장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1945년 해방이 되어 직원으로 일했던 장남문 씨가 불하 받아 해창의 2대 주인이 되었고 장남문 씨는 돈도 많이 벌어 해남 삼화 초등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1960년대 들어 양조업에 종사하던 황의권 씨가 인수해 30년을 술을 빚어오다 대를 이어갈 형편이 못돼 이곳을 자주 찾던 오 씨 부부와 인연이 되어 해창의 지금이 있게 됐다.

오 씨 부부는 그길로 가양주 대가인 박록담 씨와 배상면주가의 창업주 배상면 씨를 통해 전통 막걸리의 제조법을 전수받고 다양한 주조법까지 배운 뒤 해창 막걸리 살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 집 술맛이 궁금하면 그 집 정원과 우물을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숲이 준비한 해창 막걸리를 한 모금 입에 넣고 700년을 수행처럼 살아온 배롱나무 우주 속으로 들어가 본다. 직접 키우는 27마리 고양이가 숲속에 아지트를 짓고 키를 달리해서 크는 40여 종의 식생들과 함께 숲에서 조화롭게 살아간다. 사람 손길이 낯설지 않은 지 경계심보다 제 영역이니 알아서 쉬었다 가라는 표정이다.

해창의 정원이 아름다운 건 그들의 은밀한 삶을 존중한 사람들이 있어서다. 속 깊은 주조장과 풍류가 있는 정원을 사랑한 사람들이 멀리서도 찾아올만하다.

오 대표는 막걸리 세잔은 마셔야 비로소 해창의 정원이 제대로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해창 막걸리 딱 세잔 마시고 숲속을 거닐어 본다.

숲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다. 술을 만들다 보면 조경에도 일가견이 생기는지 자연의 일부처럼 자연스러운 멋이 살아있는 해창 정원은 소화제다. 속이 시원하고 눈이 시원하니 근심도 잠시 쉬어가겠다.

해창 정원에서 지나치면 후회할 곳이 있다.
백제의 주조장인 주신(酒神)을 부르는 종을 세 번 치면 운명이 바뀌기 때문이다. 정세균 현 국회의장, 이낙연 전 국무총리도 모두 이곳에서 종을 쳐 운명이 바뀌지 않았나 싶다.

13년 전 해창 정원을 복원하면서 일제 강점기 역사의 뼈아픈 과거도 마주하고 기억하는 비석도 꿋꿋하게 서있다. 그게 고(苦)라면 락(樂)이 되는 미담도 있다.

이곳은 제물포조약 당시 조선 대표였던 백파 신헌구(1823 ~ 1902)가 살던 집터로 암행어사로 5년간 머물던 그가 한양으로 떠나면서 전답을 마을에 기부했는데 주민들이 세운 공덕비가 그를 기억하게 한다.

정원을 두 어 바퀴 돌고 와서 다시 해창 막걸리 12도를 마셨더니 자동으로 풍월이 읊어진다.

'해' ~ 해풍 맞은 찹쌀과 멥쌀이 일냈다.
'창' ~ 창대한 막걸리의 세계
'막' ~ 막술이 아니다.
'걸' ~ 걸림 없이 수월한 맛이 최고다.
'리' ~ 리듬을 타는 해창 막걸리를 함부로 비교하지 마라.

아스파탐 없는 해창 막걸리에 없는 것은 숙취와 트림이라면 있는 것은 밥처럼 포만감과 묵직하고 담백한 구수한 맛이 있다.


올해로 12년째 술을 빚는 오병인 대표의 느긋한 미소 속에 해창 막걸리의 여유가 보인다.
해창 막걸리의 이유 있는 진화는 정원의 식생들과 교감하며 생긴 영감의 산물이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조만간 해창 블루(15도), 해창 롤스로이스(18도)가 출시를 앞두고 있다.

해창 막걸리가 깊고 자연스러운 맛을 내는 건 해창 뒤뜰에 있는 우물로부터이다.
지하 150m에서 끌어올려 정수한 지하수가 기본이 되고 감미료 없어도 충분히 좋았던 눅진한 단맛은 해풍 맞은 해남 찹쌀의 순수함이 한몫했다.

그리고 완전 발효되기까지 근 한 달을 수행하듯이 시간을 보내고 차오르는 산고의 진통은 해창의 특별한 비법인 클래식 음악으로 다독인다.


해창 시음장은 추억이다.
오 대표는 젊은 시절 로망으로 샀던 앰프와 릴데크 그리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을 간식처럼 들으며 청춘을 보내고 중년이 되기까지 함께한 클래식이 친구처럼 정겹다.
사람도 술도 음악이 숙성시키나 보다.


해창 막걸리 첫발은 찹쌀 고두밥에서 시작한다.
고슬고슬 꼬들꼬들 고두밥이 알맞게 쪄지면 막걸리 제조할 준비가 됐다는 것이다.

해창 막걸리는 도수별 찹쌀 조합이 다른데 찹쌀과 멥쌀 비율 5:5이면 6도가 되고 그보다 높은 도수는 비율이 8:2로 들어가서 더 풍성한 단맛을 낸다. 해남 찹쌀과 물이 결국 신의 한 수였다. 어린 시절 친척이 주조장을 해서 심심치 않게 먹었던 고두밥이 지금도 추억처럼 맛있다.
고두밥 한 줌이면 세상 행복했던 시절이 좋았다.


해창 막걸리는 프리미엄 막걸리다.
막걸리라고 하니 막 담근 술처럼 보이지만, 해창 막걸리는 좋기로 유명한 해남 찹쌀과 멥쌀을 원료로 맑고 청아한 해남 물에 한 달이라는 긴 시간 클래식과 함께 발효하고 숙성시켜 다른 막걸리와는 비교를 거부하는 자존심이 무척 센 막걸리다.

그래서 해창 막걸리 6도가 제일 저렴해도 4천 원이고 9 도는 7천 원이며 12 도는 11,000원이다. 일반 주조장 탁주 11병을 사서 마실 수 있는 가격이니 바닥에 질퍽하게 앉아 밥그릇에 따라 마시는 대중주라기보다 막걸리 애호가들이 탐내고 격식 차려 마시는 막걸리라고 할 수밖에 없으며 간혹 해창 막걸리 맛이라도 보려면 서울 이마트나 해남 농협 외는 찾을 수 없으니 그 또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 궁금한 맛이지 싶다.

또한 9 도와 12 도는 아예 시중에서 팔지를 않고 오로지 택배로만 구입할 수 있다는 것도 희소가치를 높이는 셈이다.


월, 수, 금요일에만 술을 빚는 해창 주조장은 오후 2시쯤부터 애주가들에게 갈 막걸리 포장에 바쁘다. 해창의 이름을 걸고 세상으로 나가는 막걸리니만큼 부모 품 떠나는 자식이다.

오로지 해남 찹쌀의 녹진한 단맛과 멥쌀의 순박한 단맛 그리고 효모가 열 일 해서 한 달을 채운 해창 막걸리가 기품 있다.

집 떠나는 막걸리니만큼 채비를 단단히 한 폼이다. 도수별로 6도, 9도, 12도 포함 6병이 기본으로 나간다.


해창 주조장 들어가기 전부터 만났던 녹슨 창고가 을씨년스럽다. 추수한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임시 저장한 쌀 보관소였다. 다가오는 6월 초에 보수에 들어가서 또 다른 막걸리 문화를 일으킬 문화이벤트 장소로 꾸밀 예정이다.

고천암 들녘 해창 포구가 해창 막걸리의 역사를 알고 있다.
일찍이 3세기경 백제의 수수보리라는 주조장인이 누룩으로 술 빚는 법을 일본에 전해 일본의 주신으로 추앙받고 있는데 일본 응신천황이 “수수보리가 빚은 술에 내가 취했네, 마음을 달래주는 술, 웃음을 주는 술에 내가 취했네”라는 시를 남겼다. 2천 년 전 해창 주조장 앞은 포구였고 백제의 땅 해창 포구에서 수수보리가 일본으로 건너가지 않았을까? 정원에 있는 종을 세 번 치면서 나의 건강과 행운을 빌어보는 것도 해창 주조장에서만 경험해 보는 색다른 이벤트일 것이다.


심인섭 hoahn01@hanmail.net